theTAX tv 채흥기 기자 |
2025년 연말을 보내면서 서울대학교 유성호 법의학 교수님이 발간한 「유언노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법의학이란 죽은 사람의 신원확인, 사망원인 등을 파악하여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유가족에게는 궁금증과 억울함을 해소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유교수님이 27년간 3,000건 이상의 부검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사례로 기억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한 청년에 대한 사연입니다.
이 청년은 학창시절 늘 좋은 성적을 받았고, 좋은 대학을 나와 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몇 년만 눈 딱 감고 고생하면 분명히 합격할 것이라 굳게 믿고 고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여러번 고시에 실패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고시 공부에 몰두하였고,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서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그가 고생한 것을 알았기에, 또한 자존심이 강한 청년이 상처를 받을까 봐 “그만두라”라는 말을 선뜻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진 채로 세월만 무심히 흘러갔고, 홀로 고립된 생활을 한 그 청년은 심적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한강에 투신하였습니다.
분명 한강에서 시신이 발견되었고 익사가 확실한 경우였으나 가족들은 “이 사람은 죽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경찰에 부검을 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여 부득이 부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검 결과는 몸의 상처가 없었으며 익사의 소견이 분명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다른 사람들과 고립된 상태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청년은 본인의 자존심으로 인해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였습니다. 설사 고시에 합격한 이후라도 그 다음은 어떠할까요? 고위직에 승진하고 부를 누리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장래가 촉망되던 건강하고 똑똑한 그 청년의 삶은, 병이나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짧은 생을 살았어야만 하는 자식보다 부모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삶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청년의 죽음을 통하여,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여 보게 됩니다.
삶은 어떠한 결과를 얻는 것보다 살아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결과란 목표한 많은 재산을 취득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지위나 자격증, 또는 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실패자라 할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고시에 떨어져도 그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과정도 인생이고 설사 당초 계획하였던 고시를 포기하고 직장에 취직하여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것도 곧 우리의 인생입니다.
고난을 극복하면서 인내하고 새로운 인생의 방향전환을 통하여 행복을 느끼고 그 고단한 인생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결과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8장 3절~11절)음행중에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가 등장합니다.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당시의 지도자층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끌고 와 세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율법(즉 모세의 율법)으로는 돌로 쳐서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것이었고, 사랑과 용서를 주장하시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한참동안 땅바닥에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니 어른부터 젊은이가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여자만 남았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고발했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여자가 대답하기를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실수하고 실패하고 범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많은 군중 앞에서 창피 당하는 순간에 죽음보다 더한 수치심이 들었을 것이며,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돌로 맞아 죽는 상상으로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듯이 부족한 우리 자신을 용서하여야 합니다.
2025년 한해를 보내면서 가장 안타까운 일을 생각한다면 5년동안 같이 지냈던 직원이 저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퇴직한 사건입니다. 그는 ○○지점에 근무 하였는데, 어느날 지점장 세무사에게 2주 후에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세무사업 30년동안 운영하면서 회사를 사직하며 얼굴 대면은 물론이고, 전화 한 통화없이 사직하는 직원은 처음 보았습니다. 정말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앞으로의 사업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거래처 사장님을 만나보면 사업을 계속하여야 할지 접어야 할지 고민하시는 사장님이 많았습니다. 많은 거래처가 폐업하거나 매출이 감소하고 있고, 열 거래처 중 이익이 나거나 매출이 증가하는 기업은 한 거래처 정도뿐이었습니다.
기업 경영의 환경은 날로 어려워지는데 설상가상으로 국가 지도자 및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도덕적 양심은 차치하더라도, 지켜야 할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오히려 국민들을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심이 번개불(불도장)에 맞아서 마비된 상태입니다. 마비된 양심은 도덕적 감각을 잃고 거짓말을 일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독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아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쓴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서로 살려고 악다구니를 쓸 줄 알았다. 극한 상황이 오면, 악마의 본성이 살아 날거라고...... 그런데 전혀 예상 못 한 상황을 보았다.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도 생명이 꺼져가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빵을 나누어 주는 상황을 목격하였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쇠를 단단하게 만들어 칼이나 낫을 만들려면 뜨거운 불 가운데 쇠를 달구었다가 찬 물에서 식히고 그 다음 대장간에서 두드려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더욱 단단한 쇠가 되어 칼이나 낫으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담금질) 그와 같은 이치로 사람도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더 큰 행복과 성취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령 박사는 암 선고를 받고 죽음 직전에 마지막 인터뷰에서 산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관찰해 보면 알아.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 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를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게 등용문이야.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데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게 아니야.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 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네. 다만 잊지말게나. 우리가 죽은 물고기가 아니란 걸 말야」
성경 이사야 43:18~19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흐르는 강물은 멈추는 법이 없고, 더구나 예전의 그 물이 아닙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웅덩이의 물거품도 한 순간에 사라졌다 떠오르며 오래 머무는 법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는 흘러갑니다.
이제 새로운 2026년도 우리의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광야에 길을 내고, 생명이 메마른 사막에 강을 내는 개척의 정신으로 한 해를 전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