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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인터뷰] 탈북 무용가 김옥인

1997년 탈북 20여년 (사)평양민속예술단 활동
단장으로 20여 단원 이끌며 KBS 출연 자부심
2021년 고 노무현 생가 방문 민주화 의미 새삼 느껴

 

 

theTAX tv 채흥기 기자 | 탈북민 무용가 김옥인.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북에서 9살 때 무용을 하고, 김일성 앞에서도 춤을 추었던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20여년 현재까지 무용가의 삶을 살고 있다.

 

김옥인(54) (사)평양민속예술단 단장. 현재의 그의 직함이며, 유튜브 <옥인TV>를 운영하고 있다. 김옥인 민속 무용가는 지난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도저히 먹고 살수 없어 중국을 통해 탈북한 이후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코로나 시국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술가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삶속으로 들어가 보자.

 

다음은 일문 일답.

 

선생님. 자신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북에서 온 무용가 김옥인 입니다. 오늘 이렇게 The taxtv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저는 탈북민으로 대한민국에 온 지 20여년이 되어 대한민국에서 마음 껏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9살 때부터 조선민속무용을 배웠습니다. 많은 공연을 했고, 김일성 앞에서도 공연을 하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북한에서의 무용 전공을 살려 대한민국에서 무용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9살 때부터 공연을 했는데, 북한에는 평양과 지방에도 청소년소년궁전이 있습니다. 제 고향은 자강도 입니다. 여러분이 자강도 하면 생소할 수 있겠으나 자강도는 평안북도와 양강도 사이 국경을 이루고 있는 내륙지방에 있습니다.  산과 강을 끼고 있어 경치가 아주 좋으며, 특히, 군수품 공장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1월인가요? 자강도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군수품 공장이 많습니다.

 

저는 9살 때 무용수로 발탁되어 공연을 하면서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매를 맞기도 했고, 욕도 먹어야 했지만, 무용가와 안무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견뎌내야 했습니다.

 

탈북을 하게 된 동기는.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경제사정이 무척 어렵게 됐습니다. 그때가 김일성 사망 이후입니다. 식량 사정도 너무 어려워 저희 가정경제도 어렵게 됐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가족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북한에서 살아갈길이 막막하니 중국으로 건너가야겠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북한에서 당원이셨는데,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지요. 그러면서 아버지가 왜? 반동적인 말씀을 하시지 하면서 조금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중국(조선족) 태생입니다. 20대 초반에 북한에 와서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뤄 살다가 1984년 중반에 중국과 북한이 교류가 이뤄지면서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지요. 당시 중국에서 많은 물품을 사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생각을 항상 갖고 계셨습니다. 중국이 먹을 것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너무 배가 고파서 그 말씀에 공감하고 온 가족이 중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저희 집과 조카까지 대식구가 움직여야 하는데, 모두 갈수 없어 저는 5살 아들과 먼저 떠났고, 나중 어머니를 비롯 모든 가족들이 북한을 탈출하였습니다. 지난 1996년에 시도해 1997년 모두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탈북에 성공했으나 중국에서 살아가는데 엄청 힘들었습니다. 항상 공안에 붙잡히면 북송된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어려움은 인신매매범들이 북한 여성만 납치해 팔아 버립니다. 

 

저도 인신매매를 당해 끌려가던 중 중간에 도망쳐서 무사히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제 동생 역시 북송되어 보름 동안 북한 단련대에서 생활하다 도망쳐 재탈북하였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다시 선택한 길은 누구도 찾지않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인도하는데로 온 가족이 민가(마을)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깊은 곳에 들어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다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2001년 7월 입니다.

 

온가족이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저는 무용을 했으니까, 제가 가장 자신있는 것이 무용이더라구요, 그래서 사회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예술분야 입니다. 

 

탈북자 중 북한에서 예술을 했던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무용, 성악, 악기 등 이 분들을 구성하면 좋은 공연을 할 수 있겠구나 의견이 모아져서 지난 2002년 12월부터 평양민속예술단에서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양민속예술단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초창기 인원구성은 7명이었고, 현재는 20명 안팎으로 구성해 공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공연 장르는 무용, 가요 등이며, 대한민국에서 히트를 친 트로트를 북한의 발성법으로 공연하고 있는데, 초창기는 어려웠어요. 예술단을 알려야 하겠더라구요, 피알이라고 해야 하나요. 무료공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하다보니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민속예술단에서 공연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고, 좋은 점도 있었고, 추억거리도

 많았습니다. 

 

우리 예술단은 많이 찾아줘야만 공연을 하고, 단원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데요, 차량운행(45인승), 의상 마련과 더 많은 단원들을 구성해야 하는 등 어떻게 해야 모두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해봤습니다.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여기저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멋지게 공연을 해드렸습니다. 

 

TV에서 보았던 공연을 현장에서 보여드린다면서 홍보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차량이 없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어코디언, 기타 등 악기를 메고 다녔습니다. 그러게 하니까 힘도 들고 하는데, 좋은 분들이 나서서 도움을 주어 45인승 버스를 자체적으로 마련했습니다.

 

TV 출연도 많이 했습니다. KBS 가요무대 출연도 했습니다. 단원들이 하춘화, 설운도, 현철 등 가수들의 백댄서를 했는데, 제가 안무를 했습니다. 세계에서도 시청하는 KBS 가요무대에 우리 예술단이 출연했다는 자부심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최근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옥인TV]를 보니, 노무현 전대통령 생가에 가서 이민주씨가 기타를 치고, <솔아솔아 푸른솔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매우 새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시게 된 동기는 어떤가요?

지난해 유튜브를 막 시작했을 때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세계적으로 경제가 부상한 국가인데, 그 뿌리를 모릅니다.  저는 그래서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기행하면서 정체성을 알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고, 코로나 시국을 맞으면서 대한민국을 알아간다는 의미에서 공부도 할겸 노무현 생가에 가서 그 분이 가졌던 생각을 알게 되어 감동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이 되어 5년을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는데, 당시 많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탈북민들에 대한 정책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 고마움을 간직하고 갔었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가끔 당시 유튜브를 되돌아 보곤 합니다.

 

사회통합과 지역주의 갈등을 없애고, 변호사로서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변호에 나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인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노무현 생가를 돌아보면서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눈물을 흘려면서 느꼈던 것은 대통령을 끝내고 고향에 내려와서 평범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면 똑같이 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5.18민주항쟁 등 많은 분들이 투쟁하셨잖아요. 그런데, 민주화 꽃을 확 피워주신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데,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북한에는 여행의 자유가 없습니다. 북한에도 경치가 좋은 곳도 많고, 역사 깊은 곳도 많으나 자유가 없는 북한에는 마음대로 기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자유가 있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도 가고, 배우고, 국민들과 소통하고, 이런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미국도 가고 싶고, 공연을 위해 2019년 대만과 필리핀, 베트남을 다녀왔습니다. 그 때 공연을 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누구나 여행의 자유가 있어 좋았고, 코로나가 빨리 극복되어서 해외여행도 가고, 대한민국에서의 기행을 유튜브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탈북민들은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참치회를 드셔보니까 어떤가요.

북한에서는 회라는 식생활문화가 대체적으로 없습니다. 생선을 구워먹거나 조려서 먹습니다. 북한에는 냉동.냉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와 어떤 분의 초대로 횟집에 갔는데, 생선을 날로 먹는데 너무도 잘먹는 거예요. 먹어보니 처음엔 어색했어요. 저는 음식을 안가리는 편이고, 몸이 좋다고 하니 무작정 먹어봤는데, 그 중 참치회가 가장 맛있었어요. 

 

조선시대 유생들이 공부한 성균관에 오셔 보셨나요? 여기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년 됐다고 합니다. 대사성을 지냈던 윤탁이 심었다고 하네요. 가을이 되면 바닥이 노란색으로 물들입니다.

저는 드라마 중 사극을 아주 재밌게 봅니다.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태종 이방원 사극을 즐겨 봅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의 역사를 새롭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균관은 옆을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오늘 처음으로 들어와 봤습니다.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 유튜브를 보면 전국을 돌면서 역사유적이 있으면 자세하게 설명을 하던데요. 사전에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부를 나름대로 해요. 그러니까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어요. 어떤 분들은 그러더라고요. 뭐 그렇게 까지 공부해서 하냐, 그냥 쭉 찍어서 그대로 올리면 되지 그래요. 하지만 재미를 떠나서 기행 자체를 돌아보고 느낀 점 이런 거를 다루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로 담아야 나도 공부하고, 구독자 분들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