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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침내 사람과 땅과 하늘의 시간이여!

죽은자만 억울...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합동추모제
교과서 수록, 유해발굴, 국가추념일 제정 촉구

 

 

마침내 사람과 땅과 하늘의 시간이여!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제71주기 전국합동추모제에 부쳐

 

                                                          이원규 시인 

 

71년이 지나도록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날마다 밤마다 기가 막히고 피눈물이 흐릅니다

한국전쟁전후 한반도 남쪽에서 

도대체 그 무슨 잔인무도한 일이 일어났지요

1945년 광복이 되었지만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지옥의 문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대구와 제주도 여수와 순천, 거창과 함양-산청,

그리고 지리산과 백두대간 굽이굽이

악마의 시간이여, 민간인 대학살의 현대사여!

한여름 백주 대낮에 자행된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이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마을과 마을은 희망의 삶터가 아니라 학살의 땅, 천형의 땅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재판도 없이 죽어간 백만 명의 민간인들은 

이 땅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습니다

금수강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리고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도 그 호흡을 멈추고 

저 하늘마저 한이 서린 핏빛 천막이었습니다

제대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유족들,

일평생 빨갱이 가족, 빨갱이 자식으로 몰려

살아남은 자의 슬픔마저 진압과 감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친일파에서 친미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한반도 남쪽의 현대사는 왜놈 앞잡이의 이름으로,

어설픈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재자들의 핏빛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죄없는 백성을 죽이고 또 죽이는

차라리 전쟁보다 더 무서운 광기의 날들이었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살아남은 자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천형처럼 재갈이 물려야 했지요

밤마다 원혼들이 반딧불처럼 날아다녀도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혀를 깨물고 무릎을 꺽어야 했지요

대한민국 정부도 미국도 모두 입을 닫았습니다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았으며

그 누구 하나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부끄러운 분단조국입니까

그리하여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은 

뼈와 뼈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봉분도 없는 저 캄캄한 구덩이 속의 

부모님과 형제자매와 어릴 적 동무들

이분들의 희디흰 뼈가 아프니 

살아남은 자들의 뼈도 일평생 쑤시고 아플 수밖에요

아, 악마의 시간이여, 민간인 대학살의 현대사여!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하늘이 부르자 땅이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캄캄한 땅속의 희디흰 뼈들이 일어서서

죽음의 역사, 광기의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했으니 

이제 살아남은 우리가 당당하게 응답할 때가 왔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형님, 오빠, 동생......

마음 놓고 울어도 보고 대성통곡도 하며 

살아남은 우리가 분명히 대답해야 합니다

못난 국가도 국가요, 비겁한 조국도 조국이라면

이제 대한민국 정부도 제대로 무릎 꿇고 대답할 차례입니다

백만 명 민간의 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여!

마침내 사람과 땅과 하늘의 시간이여!

 

                                                       이원규 시인/ 사진작가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빛을 깨물다> 등 8권 출간, 산문집 <나는 지리                                                            산에 산다> 등 5권 출간. 

                                                        제16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이원규 <별나무> 등 초대 사진전 5회

 

 

theTAX tv 채흥기 기자 | 죽은자만 억울하다. 지금부터 70년전인 한국전쟁 발발 전후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희생자 제71주기 합동추모제가 지난 15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개최됐으나 그야말로 쓸쓸한 그들만의 행사에 그쳤다. 희생자는 110만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회장 김복영) 주최하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가 후원하는 행사로 박병석 국회의장, 전해철 행정안전부장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등이 추모사를 대독 또는 서면으로 대신했으며, 행사가 서울시청에서 열렸음에도 오세훈 시장은 오지 않고 정무부시장이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 특히, 서울시는 서울시청에서 행사를 했는데고 불구하고 보도자료 마저 내지 않는 무성의를 보였다. 

 

이날 행사는 김복영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 회장의 축문과 인사말에 이어 관련 각 기관장 추모사 그리고 추모공연, 이원규 시인의 추모시 <마침내 사람과 땅과 하늘의 시간이여!> 낭송, 최도은 가수가 <진혼곡>을 불렀다.

 

김복영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아직도 죄 없이 천추의 한을 품고 가신 영령들께 진실을 규명하고 영령들의 명예회복이 재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고통과 통한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면서 "민간인 학살은 잊혀진 역사도 아니고 더 이상 숨길 수 있는 과거사도 아니기에 반드시 사실대로 밝혀내어 다시금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하며, 70여년의 가슴을 쓸어 내리는 고통과 아픔을 우리 서로의 손에 손을 맞잡고 격려하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